Pressed Drawing - Morphogenesis
- 전시명유연함의 영속성 (The Permanence of Flexibility) (May 14 - Jun 15, 2025)
- 크기830x600x760mm
- 제작년도2024
- 가격900만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변하지 않고 영구성을 유지하는 강함의 대명사인 스테인리스 스틸은, 심병건 작가의 육중한 프레스에 의해 점묘법처럼 한 점 한 점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는 어떤 형태나 내용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마치 드로잉을 하듯 자기 생각을 막힘없이 펼쳐놓는다. 연필에 힘을 주면 농도가 짙어지고 힘을 빼면 옅어지듯, 이 프레스에 압력을 가하면 주름효과가 크고, 압력을 약간 주면 펴짐효과가 강조된다.
사람과 사람, 시대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바뀌어가는 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의 육중한 프레스는 가느다란 선을 그리는 붓이 되었다. 그가 다루는 프레스의 섬세함은 이야기를 쓰는 타자기와 같다. 때론 스테인리스 강철판이 원고지일 수 있고, 화음을 내는 악보일 수 있다. 수평의 금속판을 망치질하는 장면을 연상한다면, 타악기의 파장 또는 공명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청각적으로 전달되는 화음의 음표들이 원초적일 수 있지만, 분명 그는 리듬을 기록하고 시간을 저장한 것이다. 순간에 자신을 맡긴 재료들은 인위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또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킨다.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창조이고, 그 세계의 예술 속에 스며있는 정신, 반짝이는 진리, 그것은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인 것이다. 파장이 변환하듯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강한 듯 유연하게, 때론 분출하듯 거친 휘몰아침으로 빠져들게 한다. 프레스의 강한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긴장과 풀림은, 작품을 창작하는 그만의 예술세계를 묘사하는 작가만의 언어가 되었다. 아련한 듯 섬세함과 작가 특유의 볼륨감 위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주변의 어둠을 뚫고 마치 조명이 켜져 있는 듯 작품 위로 타고 흐르는 굵은 빛으로 거듭난다. 그 빛으로부터 모호한 경계가 주는 몽환적인 느낌에 이르기까지의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각적인 다양함도 특징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물성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살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수한 실험과 고된 작업의 반복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작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조각가의 ‘프레스 드로잉’ 시리즈를 보면, 섬세한 내적 시선과 그의 작업에 대한 작가의 진정성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세계는 접힘과 펼침의 무한 연속’이라는 라이프니츠적 영감처럼, 접혀있는 주름에는 존재가 살아낸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하나의 주름이 형성되기까지 많은 과정과 사연을 스스로 간직하고 기록하는 기억의 저장소인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뇌의 주름 같기도 하고, 하드디스크의 저장 공간 혹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주름의 공간에 저장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다움의 정신이다.” 시작과 끝이 없이 무한히 접힌 주름과 펼침의 생명이 고동치는 형상, 그런 형상의 진화를 찾아 작가는 오늘도 무한한 공간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