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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건 작가/ a borderline between 상세 내용

최민건 작가/ a borderline between
현실과 기억의 틈에서 ‘나’를 묻다
‘경계’라는 하나의 화두를 파고든 20년

“몇 년 전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청주 시내의 빈 건물들을 찾아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불 꺼진 창, 닫힌 문 너머 어둠 속에서 어느덧 나는 책상과 이젤 등을 배치하고 있었죠. 어둠의 장막 사이에 놓인, 다른 차원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작가 노트 중 일부

최민건 작가의 캔버스 앞에서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잠시 발을 멈춘다. 그의 그림은 우리가 단단한 현실이라 믿었던 세계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낯선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그 안에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이 근원적인 물음은 그의 캔버스 전체를 관통하는 출발점이자 목적지이다.

오는 8월 20일 청주 네오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최민건 작가의 초대전은,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경계’라는 화두를 탐구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자전적 기억을 탐사하는 ‘기억 속의 여행’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현실과 가상의 본질을 묻는 대담하고 새로운 개념의 세계까지 아우른다.​

그의 최신작 중 일부는 관객을 아련한 시간 여행으로 이끈다. 지금은 사라진 ‘럭키’ 간판, 각진 실루엣의 ‘포니 택시’, 그리고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약속의 상징이었던 ‘시계탑’까지. 이는 작가의 기억 속에 박제된 유년 시절 서울의 모습이다. 작가는 세피아, 보라, 파랑 등 다채로운 단색의 ‘감정 필터’를 통해 기억의 풍경을 재구성한다. 나아가 그의 시선은 대로변의 공적인 기억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을 법한 사적인 ‘골목길’로 옮겨가며 더욱 내밀한 탐구를 이어간다.

이 기억의 여행에는 언제나 탐험가인 ‘개’가 있다. 개는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다. 그는 이 개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탐색하고 현재의 자신과 연결 짓는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영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둠의 장막 사이에 놓여진, 다른 차원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간과 사물, 그리고 시간의 익숙함과 낯선 느낌이 교묘하게 공존하는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이 ‘경계’를 발견하는 경험을 통해 탄생한 ‘개’는 작품 속에서 진화를 거듭한다. 현실에서 소외된 채 도시를 방황하고, 분열된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며(두 마리의 개), 그 분열을 온전히 내재화한 새로운 존재(머리 두 개 달린 개)로 변모한다.

최근 그의 시선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더욱 근본적인 영역으로 향한다. ‘개’는 사라지고, 작품은 더욱 대담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진화한다. 신작 ‘표류(Adrift)’에서는 ‘개’ 대신 부서진 ‘자아의 파편’이 텅 빈 공간을 떠다닌다. 이는 이야기로 설명될 수 없는, 현대인의 근원적 단절감을 상징한다.

또 다른 신작 ‘good morning...’은 영화 ‘트루먼 쇼’를 인용한 제목과 함께, 완벽한 휴양지의 풍경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그려낸다. 마치 대형 전광판의 소자 고장처럼, 쨍한 푸른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보라색 직사각형 ‘글리치(Glitch)’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완벽한 세계가 어쩌면 조작된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의문을 던진다.

'The other side m302'에서는 현실적인 공간에 갑자기 나타난 문이 보랏빛 추상 세계로 이어지며, 경계 너머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다채로운 방식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며,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작가의 모든 탐구가 집대성된,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역작이다.​

물론, 이처럼 명확한 상징체계와 일관된 스타일은 그의 작품이 단편적인 관점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는 비평적 시선을 낳기도 한다. ‘개=작가’라는 공식을 한번 이해하고 나면, 모든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강점이 된다. 그의 작업은 넓이를 추구하기보다 깊이를 파고드는, 집요하고 성실한 탐구 과정이다. 그는 ‘경계’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페르소나와 배경, 시점과 스타일이라는 변수를 끊임없이 바꾸는 ‘경계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그의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것은 이 미세한 차이와 대담한 진화의 과정을 발견하는 데 있다.

결국 최민건이 그려내는 것은 한 개인의 추억 여행을 넘어, 우리 시대 전체의 자화상이다. 현실과 가상, 기억과 현재가 뒤섞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작품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묻는다. 캔버스 앞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의 개와 함께, 혹은 그의 새롭고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기억 속 골목길을 거닐며, 잊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