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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명 작가/ 똑같은 하루는 없다 상세 내용

박진명 작가/ 똑같은 하루는 없다
시간의 풍경화가, 박진명
‘똑같은 하루는 없다’

박진명 작가의 예술 세계를 세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주저 없이 ‘잔상(殘像)’, ‘경계의 융합’, 그리고 ‘자연의 서정성’을 꼽겠다. 이 세 가지 핵심은, 오는 20일 네오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초대전 ‘똑같은 하루는 없다’가 단순한 전시 제목을 넘어, 작가의 치열한 예술적 구도(求道)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작가는 “결국 제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 무언가입니다. 가령, 어제의 감정이 남긴 색깔, 시간이 지남에 따른 계절의 냄새와 공기, 달빛이 내리는 자리 같은 것들이죠. 몸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잡히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이 남긴 흔적, 그 아련한 잔상들을 화면을 통해 기록하는 것입니다.

가령 같은 장소지만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고,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그 무언가입니다. ”

이 고백은 그의 첫 번째 키워드인 시간을 새기는 ‘잔상’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요약한다. 그의 작품 속 ‘잔상’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투영된, 이른바 ‘흑백의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기억의 꽃’이다. 그의 신작들은 바로 그 ‘잔상’의 개념을 더욱 확장하고 심화시킨 결과물이다.

캔버스를 가득 메운 무수한 선과 점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의 분열이나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처럼 보인다. 이는 바로 시간의 풍경 속에 켜켜이 쌓인 존재의 흔적이며, 작가가 온몸으로 시간을 맞이하며 새겨 넣은 ‘바람의 얼룩’이다. 그의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은 그 자체가 시간을 새기는 수행이며, 작품은 그 결과물인 시간의 지층인 셈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경계의 융합’은 그의 독창적인 방법론을 보여준다. 청주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전통의 틀에 갇히지 않는 그의 실험 정신은 재료의 선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작업에서 ‘분할된 프레임’이 시간의 단편성과 기억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현대적 장치였다면, 이제는 재료 자체의 융합을 통해 그 경계를 허문다. 작품 '꽃처럼'에서 보이듯, 그는 동양화의 정신적 기반인 ‘먹’과 ‘종이’ 위에 서양 재료인 ‘과슈(Gouache)’를 과감히 쌓아 올린다.

스며드는 먹의 사유와 쌓아 올리는 과슈의 물질성, 정신과 감각이 한 화면에서 만나 전에 없던 조형적 하모니를 창조한다. 과슈는 수채화와 달리 불투명하고 무광의 질감을 지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질감과 선명한 대비를 구현하는 데 최적의 재료다. 이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려는 작가의 치열한 탐구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키워드인 ‘자연의 서정성’은 그의 작품에 따뜻한 숨결과 깊이를 불어넣는다. 그의 작품에 깃든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서 알 수 있듯, 자연은 여전히 그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매개체다. 그의 작품 속 나뭇가지, 꽃, 별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비추고 우주와 교감하는 통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그 서정성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선명한 녹색의 생명력이 원형 캔버스 안에 응축된 '그때, 그곳'은 기억의 구조를 파고드는 이성적 탐구에 가깝다. 반면,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가득한 '꽃인가'는 ‘이것이 꽃일까, 눈일까’라는 아련한 질문을 던지며 감성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마침내 '별이 빛나는 밤에'에 이르면 그의 서정성은 절정에 달한다.

이는 색채의 활용을 통해 그의 작품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는 과거의 기대에 대한 완벽한 화답처럼 느껴진다. 깊고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터져 나오는 황홀한 색채의 향연은, 지상의 생명이 스스로 빛을 발해 우주의 별과 하나가 되는 듯한 숭고한 합일의 순간을 노래한다.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그가 ‘시간의 풍경화가’라는 점이다. 그의 캔버스는 특정 공간을 그린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이 머물다 간 자리를 그린 풍경화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이자 기억의 무게이며, 관객은 그 앞에서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그의 모든 예술은 ‘똑같은 하루는 없다’는 하나의 진리로 귀결된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당신의 오늘에는 어떤 ‘잔상’이 새겨지고 있는가. 박진명의 캔버스에 담긴 시간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삶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의 잔상으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