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청주 네오아트센터에 들어서는 관객은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지독히 낯선 풍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수만 개의 각설탕으로 정교하게 재현된 청주 시내의 전경이다. 눈부시게 하얗고 달콤한 향을 풍기는 이 미니어처 도시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 위태롭다.
이 달콤하고 잔인한 풍경의 설계자는 일본 설치미술가 야마모토 나오키(山本直樹·61)다. 1992년 ‘한일 현대미술교류전’을 시작으로, ‘한일예술통신’ 프로젝트 등을 통해 30여 년간 청주와 묵묵히 대화를 이어온 그가, 이제 오랜 인연의 도시를 재료 삼아 자신의 예술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심원한 질문을 펼쳐 놓는다.
야마모토 나오키는 스스로를 작가이기보다, 일본의 전통 영매(霊媒)인 ‘이타코(イタコ)’에 비유한다. 본래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 그 말을 대신 전하는 이타코처럼, 그는 사회에 떠도는 집단적 불안과 잊힌 기억, 시대의 공기를 섬세하게 채집해 그것을 감각의 언어로 번역하는 매개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설탕으로 빚은 청주, 그을린 권력의 얼굴. 야마모토 나오키의 달콤하고 잔인한 질문
교토 사가 예술대학교수이자 일본 최고 권위의 오카모토 타로 현대예술상(2017) 대상 수상자인 그의 예술은 이처럼 선언이 아닌 진단이며, 주장이 아닌 성찰이다. 달콤하지만 위협적인 세계에 대한 그의 탐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상을 안겨준 대표작 「Miss Ile이 본 풍경」은 설탕으로 만든 도쿄 풍경에 관객이 다가서면 미사일(missile)의 굉음이 터져 나오게 한, 섬뜩한 언어유희로 현대 도시의 불안을 직격한 바 있다.
그의 예술적 의식은 ‘아부리다시(炙り出し)’라 불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시작된다. 본래 아이들의 비밀 편지 놀이에 쓰이던 이 방법은, 설탕물처럼 투명한 액체로 종이에 그린 그림을 불에 그을려 숨겨진 형상을 드러내는 원리다. 야마모토는 이 순진한 놀이를 현대미술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변모시킨다. 그가 보이지 않는 설탕물로 권력자의 얼굴을 그릴 때, 그 행위는 권위란 비가시적인 약속과 합의로 이루어진 허상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허상은 ‘불’이라는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위기와 만났을 때 비로소 타들어가며 그 민낯을 드러낸다. 견고해 보이던 권력의 이미지는 캐러멜처럼 달콤하게 타들어가며 부서지기 쉬운 물질로 전락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핵심 재료인 ‘설탕’에서 정점을 이룬다. 설탕은 인류에게 달콤한 쾌락과 풍요를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어두운 착취사가 선명하다. 17~18세기,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던 설탕은 제국주의 시대의 탐욕을 상징하는 물질이었다. 야마모토는 이 전 지구적 비극의 기억을 작품의 씨실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 관객의 가슴을 파고드는 또 하나의 역사를 날실로 엮어낸다. 20세기 초, ‘지상낙원’이라는 헛된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던 조선인들이 도착한 곳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동력이 된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야마모토의 설탕 도시가 전 지구적 제국주의의 역사를 환기한다면, 청주 관객 앞에 놓인 설탕으로 빚은 ‘나의 도시’는 바로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고통과 눈물을 소환하는 역사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 중층적인 의미의 무대 위에서, 작가는 관객에게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빙의(憑依) GO!’라는 놀라운 제안을 한다. 불에 그을린 권력자의 초상을 가면처럼 얼굴에 쓰고, 잠시 그들의 힘을 ‘빙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역할 놀이가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 심지어 내가 경멸하는 존재의 입장이 되어보는 ‘급진적 공감’의 요구이자, 예술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체험이다.
마침내 예술의 마침표를 찍는 권한은 작가가 아닌, 관객에게로 온전히 이양된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워크숍 형태로 진행해 온 ‘스크랩 앤 빌드(Scrap and Build)’의 최종 진화 형태다. 도시가 끊임없이 파괴되고 재건되는 순환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했던 이 참여 방식은, 이제 하나의 준엄한 명령으로 구체화된다. “작품을 몸에 두르고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각설탕으로 된 청주를 만들거나 혹은 무너뜨려 주세요.” 우리는 권력의 가면을 쓰고 우리 삶의 터전인 청주를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온기를 더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것인가?
야마모토 나오키의 예술은 언제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예술이 빚어내는 경험과 그 경험이 남기는 질문은 우리의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새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청주라는 도시와 맺어온 그의 인연은, 마침내 ‘당신들의 도시의 운명은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하나의 존엄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네오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 도발적인 무대는, 한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모든 철학을 담아 우리에게 건네는, 달콤하고도 무거운 책임의 초대장이다. 그가 남기고 갈 ‘잔미’는 아마도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
이 달콤하고 잔인한 풍경의 설계자는 일본 설치미술가 야마모토 나오키(山本直樹·61)다. 1992년 ‘한일 현대미술교류전’을 시작으로, ‘한일예술통신’ 프로젝트 등을 통해 30여 년간 청주와 묵묵히 대화를 이어온 그가, 이제 오랜 인연의 도시를 재료 삼아 자신의 예술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심원한 질문을 펼쳐 놓는다.
야마모토 나오키는 스스로를 작가이기보다, 일본의 전통 영매(霊媒)인 ‘이타코(イタコ)’에 비유한다. 본래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 그 말을 대신 전하는 이타코처럼, 그는 사회에 떠도는 집단적 불안과 잊힌 기억, 시대의 공기를 섬세하게 채집해 그것을 감각의 언어로 번역하는 매개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설탕으로 빚은 청주, 그을린 권력의 얼굴. 야마모토 나오키의 달콤하고 잔인한 질문
교토 사가 예술대학교수이자 일본 최고 권위의 오카모토 타로 현대예술상(2017) 대상 수상자인 그의 예술은 이처럼 선언이 아닌 진단이며, 주장이 아닌 성찰이다. 달콤하지만 위협적인 세계에 대한 그의 탐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상을 안겨준 대표작 「Miss Ile이 본 풍경」은 설탕으로 만든 도쿄 풍경에 관객이 다가서면 미사일(missile)의 굉음이 터져 나오게 한, 섬뜩한 언어유희로 현대 도시의 불안을 직격한 바 있다.
그의 예술적 의식은 ‘아부리다시(炙り出し)’라 불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시작된다. 본래 아이들의 비밀 편지 놀이에 쓰이던 이 방법은, 설탕물처럼 투명한 액체로 종이에 그린 그림을 불에 그을려 숨겨진 형상을 드러내는 원리다. 야마모토는 이 순진한 놀이를 현대미술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변모시킨다. 그가 보이지 않는 설탕물로 권력자의 얼굴을 그릴 때, 그 행위는 권위란 비가시적인 약속과 합의로 이루어진 허상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허상은 ‘불’이라는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위기와 만났을 때 비로소 타들어가며 그 민낯을 드러낸다. 견고해 보이던 권력의 이미지는 캐러멜처럼 달콤하게 타들어가며 부서지기 쉬운 물질로 전락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핵심 재료인 ‘설탕’에서 정점을 이룬다. 설탕은 인류에게 달콤한 쾌락과 풍요를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어두운 착취사가 선명하다. 17~18세기,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던 설탕은 제국주의 시대의 탐욕을 상징하는 물질이었다. 야마모토는 이 전 지구적 비극의 기억을 작품의 씨실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 관객의 가슴을 파고드는 또 하나의 역사를 날실로 엮어낸다. 20세기 초, ‘지상낙원’이라는 헛된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던 조선인들이 도착한 곳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동력이 된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야마모토의 설탕 도시가 전 지구적 제국주의의 역사를 환기한다면, 청주 관객 앞에 놓인 설탕으로 빚은 ‘나의 도시’는 바로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고통과 눈물을 소환하는 역사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 중층적인 의미의 무대 위에서, 작가는 관객에게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빙의(憑依) GO!’라는 놀라운 제안을 한다. 불에 그을린 권력자의 초상을 가면처럼 얼굴에 쓰고, 잠시 그들의 힘을 ‘빙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역할 놀이가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 심지어 내가 경멸하는 존재의 입장이 되어보는 ‘급진적 공감’의 요구이자, 예술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체험이다.
마침내 예술의 마침표를 찍는 권한은 작가가 아닌, 관객에게로 온전히 이양된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워크숍 형태로 진행해 온 ‘스크랩 앤 빌드(Scrap and Build)’의 최종 진화 형태다. 도시가 끊임없이 파괴되고 재건되는 순환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했던 이 참여 방식은, 이제 하나의 준엄한 명령으로 구체화된다. “작품을 몸에 두르고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각설탕으로 된 청주를 만들거나 혹은 무너뜨려 주세요.” 우리는 권력의 가면을 쓰고 우리 삶의 터전인 청주를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온기를 더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것인가?
야마모토 나오키의 예술은 언제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예술이 빚어내는 경험과 그 경험이 남기는 질문은 우리의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새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청주라는 도시와 맺어온 그의 인연은, 마침내 ‘당신들의 도시의 운명은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하나의 존엄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네오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 도발적인 무대는, 한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모든 철학을 담아 우리에게 건네는, 달콤하고도 무거운 책임의 초대장이다. 그가 남기고 갈 ‘잔미’는 아마도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