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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문 작가/ 향수(香水), 그 너머의 향수(鄕愁) 상세 내용

최경문 작가/ 향수(香水), 그 너머의 향수(鄕愁)
향수(香水), 그 너머의 향수(鄕愁)를 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 출장을 다녀오던 길, 차창 밖으로 충북 옥천을 지날 때였다. 도로변에 ‘향수(鄕愁)의 고장 옥천’이라는 홍보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정지용 시인의 시심(詩心)을 기리는 문구였건만, 앞자리 중년 여성들의 대화가 내 귀를 잡았다. “어머, 옥천이 향수(香水)로 유명한가 봐?”

그때는 그저 웃어넘긴 가벼운 해프닝이었지만, 최근 최경문 작가의 ‘Glassscape(유리 풍경)’ 연작을 마주하며 문득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음어인 ‘향수’. 하나는 코끝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액체(Perfume)이고,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고향과 추억에 대한 그리움(Nostalgia)이다. 최경문의 캔버스는 바로 이 두 가지 향수가 공존하고 있다.

홍익대에서 판화와 회화를 전공한 최경문은 소위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가로 불린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유리병과 향수병은 사진보다 더 매끄럽고 차갑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단순히 사진 같은 재현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작가가 치열하게 쌓아 올린 예술적 성취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그의 붓질은 대상을 똑같이 베끼는 모방(Mimesis)을 넘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세계를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예술 노동자'라 칭한다. 그에게 유리는 단순한 정물 소재가 아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소중히 모으던 예쁜 유리병들에서 받은 강렬한 감각적 인상은 소년에게 삶의 형태와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었다. 뜨거운 불속에서 모래가 녹아 투명한 유리가 되듯, 그는 고된 붓질의 노동을 통해 불투명한 캔버스를 유년의 기억으로 통하는 ‘투명한 창(窓)’으로 변모시킨다.

작가는 “유리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고,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광학(Optics)의 ‘렌즈(Lens)’를 떠올린다. 유리는 빛을 투과시키지만 동시에 굴절시키는 렌즈다. 카메라 렌즈는 태생적으로 완벽할 수 없어 상이 일그러지는 ‘수차(Aberration)’를 갖는다. 기술자들은 이 수차를 줄여 더 선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겹겹이 쌓는다. 역설적인 것은, 렌즈를 겹겹이 쌓을수록 그 두께 때문에 렌즈의 밝기는 점점 어두워진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도 이와 닮아 있다. 학력, 인맥, 재력이라는 이름의 단단한 ‘유리벽’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결점(수차)을 보정하기 위해 스펙과 배경이라는 렌즈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겉보기엔 더 완벽하고 선명한 사람이 될지 모르나, 렌즈가 두꺼워질수록 내면의 순수함은 빛 투과율이 떨어지는 렌즈처럼 점점 어두워져 간다.

최경문이 그리는 찌그러진 병뚜껑과 굴절된 세상은 바로 이 ‘보정하려 애쓰다 어두워진’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작가는 유리라는 재료의 투명성과 견고함을 통해 우리가 갇힌 보이지 않는 욕망과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최근작에서 그는 정교하게 그린 명품 로고 위로 페인트 같은 액체를 쏟아부어 흘러내리는 작품들은 견고한 유리의 왜곡을 덮어버리려는 저항이자, 껍데기만 남은 욕망을 녹여버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사물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 속 영롱한 물방울은 이러한 왜곡 속에서 찰나의 순수성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촉각적 시선’을 경험하게 한다.

매끄러운 유리 표면을 만지고 싶게 만드는 그 유혹적인 터치 뒤에는, 우리가 미디어와 타인의 시선이라는 ‘유리’를 통해 세상을 편향되게 바라보고 있다는 고발이 숨어 있다.

다시 10년 전 그 버스 안의 대화를 떠올린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를 인간 내면의 상흔을 덮기 위한 '향수(香水)'로 읽고 있다. 최경문은 그 오독(誤讀)의 틈새를 파고든다. 화려한 유리병을 보며 감탄하는 우리에게, 그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투명한 진실인가, 아니면 유리가 만들어낸 찬란한 왜곡인가.

작년 12월 네오아트센터 기획전에 전시되었던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치열한 수행과도 같은 그의 붓질이 만들어낸 투명한 벽 앞에서,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품은 ‘향수병’의 진짜 의미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코끝을 스치는 찰나의 향기이든, 가슴 깊이 가라앉은 사무치는 그리움이든 말이다. / 박정식 네오아트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