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넘어 시간의 퍼포먼스
캔버스를 깨고 나온 투명한 빛의 겹침
인간에게 '본다는 행위'는 생존의 문제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점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주시하고 판별하며 시선 속에서 피로를 누적해 간다. 오랜 시간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탐구해 온 윤향숙 작가는, 아크릴이라는 현대적 인공 매체(Artificial Material)를 통해 이토록 지쳐버린 현대인의 시선을 부드럽게 껴안는 완숙한 일루전(Illusion)의 미학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크게 ‘컬러 판재 레이어 연작’과 ‘망점(Dot) 드로잉 연작’으로 나뉘며, 고정된 회화를 넘어 관람객을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체험으로 인도한다.
첫 번째 축을 이루는 레이어 연작은 회화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꾼다. 작가는 스스로 "색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색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투명한 아크릴 판재들이 겹쳐지며 뿜어내는 '색의 깊이감'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덧칠해진 물질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투명한 색 면들의 '관계'가 성립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관람자가 작품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길 때, 빛의 조사 각도와 시선에 따라 아크릴 층계 사이의 발색은 쉴 새 없이 변주된다. 이 작품들은 벽에 박제된 불변의 덩어리가 아니라, 빛과 관람자의 호흡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찰나의 장면으로 성립하는 '아슬아슬한 조건'에 가깝다. 대상을 일방적으로 관찰하던 관람자는 어느새 현재의 시간 속에 팽팽하게 붙들린 채, 색채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지속되는 퍼포먼스'의 내부로 적극적으로 편입된다.
두 번째 축인 망점 드로잉 연작은 투명한 매체 위에 익숙한 일상의 구상적 형태를 소환한다. 사과, 우유갑, 자유로의 풍경 등 평등하게 치환된 대상들 위로 과장된 거친 망점(Dot) 패턴이 덮인다. 이 무수한 점들은 대상을 허공에 부유하게 만들며, 작품 전체를 주변의 빛을 흠뻑 빨아들이는 일종의 ‘라이트 박스(Light Box)’로 치환한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이 점(Dot)들은 단순한 팝아트적 장식이 아니다. 망막과 안구라는 육체의 터널을 지나, 우리 내면에 희미하게 남은 '근원의 빛'을 감지하는 영적인 센서다. 윤향숙의 라이트 박스 앞에서 관람객은 대상을 분석하려는 '생존을 위한 시선'을 내려놓고 뜻밖의 평온함을 경험한다.
작가가 명명한 '점이동(Transforming Dots)'이라는 명제처럼, 3차원의 팍팍한 현실로 추방당해 마모된 개체(Member)들은 이 빛의 통로(Passage)를 지나 마침내 아득한 시원으로 다시 모이고 기억(Re-member)된다.
최근 방문했던 고양시의 작가 작업실은 이러한 예술적 궤적의 완벽한 물리적 은유였다. 작가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하여 기존 작업실을 처분하고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이 공존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로 이사 후 서비스로 제공된 반지하를 1차 작업실과 수장고로, 생활 공간 중 가장 넓은 방을 2차 작업장으로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공간적 동선은, 윤향숙이 직조해 내는 '빛의 연금술' 그 자체였다.
결국 윤향숙의 두 연작은 "빛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캔버스를 벗어나 공간의 빛과 능동적으로 호흡하는 이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그림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시간 속에서 색을 온전히 '체험'하는 눈부신 순간을 선사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3월 11일, 네오아트센터에 펼쳐진 투명한 빛의 겹침과 진동하는 점들 앞에서 잊고 있던 우리 내면의 빛을 다시금 마주해 보기를 바란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
캔버스를 깨고 나온 투명한 빛의 겹침
인간에게 '본다는 행위'는 생존의 문제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점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주시하고 판별하며 시선 속에서 피로를 누적해 간다. 오랜 시간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탐구해 온 윤향숙 작가는, 아크릴이라는 현대적 인공 매체(Artificial Material)를 통해 이토록 지쳐버린 현대인의 시선을 부드럽게 껴안는 완숙한 일루전(Illusion)의 미학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크게 ‘컬러 판재 레이어 연작’과 ‘망점(Dot) 드로잉 연작’으로 나뉘며, 고정된 회화를 넘어 관람객을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체험으로 인도한다.
첫 번째 축을 이루는 레이어 연작은 회화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꾼다. 작가는 스스로 "색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색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투명한 아크릴 판재들이 겹쳐지며 뿜어내는 '색의 깊이감'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덧칠해진 물질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투명한 색 면들의 '관계'가 성립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관람자가 작품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길 때, 빛의 조사 각도와 시선에 따라 아크릴 층계 사이의 발색은 쉴 새 없이 변주된다. 이 작품들은 벽에 박제된 불변의 덩어리가 아니라, 빛과 관람자의 호흡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찰나의 장면으로 성립하는 '아슬아슬한 조건'에 가깝다. 대상을 일방적으로 관찰하던 관람자는 어느새 현재의 시간 속에 팽팽하게 붙들린 채, 색채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지속되는 퍼포먼스'의 내부로 적극적으로 편입된다.
두 번째 축인 망점 드로잉 연작은 투명한 매체 위에 익숙한 일상의 구상적 형태를 소환한다. 사과, 우유갑, 자유로의 풍경 등 평등하게 치환된 대상들 위로 과장된 거친 망점(Dot) 패턴이 덮인다. 이 무수한 점들은 대상을 허공에 부유하게 만들며, 작품 전체를 주변의 빛을 흠뻑 빨아들이는 일종의 ‘라이트 박스(Light Box)’로 치환한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이 점(Dot)들은 단순한 팝아트적 장식이 아니다. 망막과 안구라는 육체의 터널을 지나, 우리 내면에 희미하게 남은 '근원의 빛'을 감지하는 영적인 센서다. 윤향숙의 라이트 박스 앞에서 관람객은 대상을 분석하려는 '생존을 위한 시선'을 내려놓고 뜻밖의 평온함을 경험한다.
작가가 명명한 '점이동(Transforming Dots)'이라는 명제처럼, 3차원의 팍팍한 현실로 추방당해 마모된 개체(Member)들은 이 빛의 통로(Passage)를 지나 마침내 아득한 시원으로 다시 모이고 기억(Re-member)된다.
최근 방문했던 고양시의 작가 작업실은 이러한 예술적 궤적의 완벽한 물리적 은유였다. 작가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하여 기존 작업실을 처분하고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이 공존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로 이사 후 서비스로 제공된 반지하를 1차 작업실과 수장고로, 생활 공간 중 가장 넓은 방을 2차 작업장으로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공간적 동선은, 윤향숙이 직조해 내는 '빛의 연금술' 그 자체였다.
결국 윤향숙의 두 연작은 "빛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캔버스를 벗어나 공간의 빛과 능동적으로 호흡하는 이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그림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시간 속에서 색을 온전히 '체험'하는 눈부신 순간을 선사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3월 11일, 네오아트센터에 펼쳐진 투명한 빛의 겹침과 진동하는 점들 앞에서 잊고 있던 우리 내면의 빛을 다시금 마주해 보기를 바란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