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kip to main content

네오아트센터 / NEO art center

네오아트센터 로고 및 주요링크

본문 영역

작가 이야기

작가 이야기

'작가 이야기' 컨텐츠

김시현 작가/ 시대를 감싸는 포용의 미학 상세 내용

김시현 작가/ 시대를 감싸는 포용의 미학
요즘 K-아트의 흐름이 거세다. 전 세계가 왜 이토록 우리 미술에 주목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 근저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어쩌면 낡고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한국적인 철학의 이미지를 가장 잘 형상화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주저 없이 ‘보자기’를 꼽는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늘 보자기에 무언가를 싸 주셨다. 그 안에는 갓 캔 농산물뿐 아니라, 말로 다 표현 못 할 사랑과 정(情)이 함께 담겨 있었다. 보자기는 단순한 천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건네는 하나의 그릇이었다.

오는 11월 5일 네오아트센터 기획 초대전의 주인공, 김시현 작가 역시 충북 진천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그렇게 추억했다. 아주머니들이 들고 오던 보자기 속에는 늘 신기한 물건들이 담겨 있어 설레었다고 한다. 이 보편적인 기억과 설렘이야말로 작가 작품 세계의 출발점이다.

이번 초대전 준비를 위해 작년 5월, 작가의 스튜디오가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곳”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곳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 그 자체를 담아낸, 치열하면서도 정갈한 공간이었다. 고도의 집중을 위한 작업 공간, 사색을 위한 휴식 공간, 때로는 요가 매트를 펼치는 운동 공간까지 명확히 나뉜 것을 보며, 나는 그의 작품이 탄생하는 배경을 직감했다. 작품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작가의 태도는 ‘오전 10시 출근, 밤 10시 퇴근’이라는, 수행에 가까운 루틴으로 이어진다.

작가에게 ‘보자기’는 운명이었다. 37살의 늦은 나이에 진학한 대학원에서 “소재를 멀리서 찾지 말고 발아래에서 찾아라”는 은사의 조언에 어머니의 장롱 속 형형색색 이불보 자수가 눈에 들어왔다. 결정적 계기는 고(故) 이어령 선생의 『우리 문화 박물지』를 만나면서부터다. “복면도 되고 가방도 되고 붕대도 되는” 보자기의 무한한 ‘융통성’과 ‘다기능성’에 대한 통찰에서 작가는 정신이 번쩍 드는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이 운명적 만남을 통해, 작가는 보자기가 단순한 사물이 아닌, ‘포용’이라는 철학 그 자체이자 ‘정(情)’을 전달하는 소통의 매개체임을 깨닫고 작품 세계의 단단한 뼈대를 세웠다.

김시현의 극사실 회화는 ‘지구력’의 산물이며, 동시에 여러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이 지점에서 김시현은 1980년대 이후 서구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의 극사실주의가 기술적 재현을 넘어, '보자기'라는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정신을 탐구하는 사유의 도구로 진화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비단의 옅은 광택, 한 땀 한 땀 수놓인 자수의 입체감까지 캔버스에 옮기는 그의 기량은 관객의 시선을 먼저 붙잡아두는 강력한 장치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완벽한 재현에 감탄하던 관객은 이내 ‘이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이 ‘특별한 궁금증과 설렘’을 통해 작가는 관객을 그림의 표면 너머, 그 안에 담긴 ‘소중한 메시지’라는 이면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그의 작품 속 보자기는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 소반 위에 현대적인 헤드폰이 놓이고, 코카콜라병이 감싸이며, 명품 가방과 나란히 서기도 한다. “전통은 시대의 흐름과 현재성에 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유희를 넘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갈등 없이 공존하며 서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만의 시각적 답변이자, 오늘날 K-아트가 세계와 소통하는 ‘성공적인 융합’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소통’과 ‘치유’이다.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넉넉한 포용성은 ‘모성애적 치유’의 넉넉함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미술평론가 김윤섭이 그의 작품을 ‘행복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토크박스’라 칭하고, 이승훈 평론가가 ‘언어와는 다른 차원의 이미지적 소통 도구’라 분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어령 선생이 글로 풀어낸 보자기의 인문학적 가치를, 김시현은 압도적인 시각 언어로 승화시켰다. 작가는 8년간의 보자기 작업 끝에 이어령 선생이 『보자기 인문학』의 표지로 그의 그림을 선택한 일화는, 시대를 넘어 ‘보자기’라는 공통의 화두로 만난 아름다운 인연(佳緣)이다.

지난주 월요일, 청주를 방문한 김시현 작가와 점심을 함께했다. 11월 네오아트센터 초대전의 마지막 조율을 마친 뒤, 우리는 함께 청주국제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장 입구, K-아트를 대표하는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김시현 회화 작품과, 그와 마주하며 공간을 채우는 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선생의 실제 보자기 작품들. 회화와 공예, 평면과 입체가 ‘보자기’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완벽한 공존을 이루는 그곳에서, 나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가 지닌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작가는 이제, 1년 넘게 준비한 대작들과 함께 자신의 뿌리인 충북 청주를 찾아온다. 11월 5일 네오아트센터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단절된 관계를 잇고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치유의 그릇’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시현이 한 땀 한 땀 그려낸 ‘소중한 메시지’가 이곳을 찾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