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실로 기묘하다. 필자가 1992년 충청일보 근무하던 시절 당시 신문 지면에는 매일 소설이 연재되고 있었는데, 그 소설 속 삽화를 그린 이가 바로 이용택 교수였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삽화 옆에 늘 흐릿하게 남아있던 '그림 이용택'이라는 글귀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더욱 놀라운 인연은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가 바로 이 교수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작년 가을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 이 교수 댁에 저녁 초대를 받아 25년 만에 사모님을 다시 뵈었을 때, 30년에 걸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인연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용택 교수는 네오아트센터 '개관 전 초대 작가'이기도 하다. 센터의 첫걸음을 함께했던 그를, 오는 11월 5일부터 12월 7일까지 3, 4관의 넓은 공간에 다시 초대하여 전시하게 되었다. 작년 청주교대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방문하여 필자가 목도했던 광활한 작품 세계, 그리고 이후 좋은 기회로 소장하게 된 80호 크기의 대작은, 이번 초대전이 단순한 기획을 넘어 깊은 예술적 공감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이용택은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다. 그의 30년 화업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화두는 '탈(脫)'의 정신, 즉 "한국화의 정형화된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모색이었다. 그의 초기 작업은 '먹(墨)'과 '기호(Sign)', '유현(幽玄)한 어둠' 속에서 '선(禪)'의 경지를 탐구하는 추상 작업에 맞닿아 있었다.
그런 그가 '붓' 대신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양의 정신'을 탐구하던 작가가 가장 현대적이고 차가운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것은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 아닌, 필연적인 확장이다. 그에게 스마트폰 카메라는 '복제'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찰나의 광학'을 빌려 '사물의 존재'를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자신의 근본적인 화두를 '공간' 위에 배열하기 위한 새로운 '붓'이다.
그는 "본 것과 보이는 것을 디지털로 그리고, 내 생각을 재현한다"고 말한다. 이번 '시든 풀' 전시는 이 '광학(Optics)'과 '사유(Thought)'가 어떻게 결합하여 영원에 이르는지를 세 개의 연작을 통해 극적으로 증명한다.
첫 번째는 166점의 '목련 시리즈'다. 교정 바닥에 떨어진 시든 목련 잎들을 기록한 이 연작은 '시간의 축적'을 보여준다. 29.7x42cm의 동일한 프레임 속에 담긴 166개의 잎은, 단순히 '사물의 전후'를 기록한 '순차적 모션'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을 통해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고, 이 차이는 관객의 감각 속에 '강도(intensité)'로 쌓여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그가 '광학적 기록' 위에 "내 이성과 감정에서 나온 손과 눈의 작업", 즉 '텍스트 드로잉'을 더하는 순간이다. 한지(韓紙)의 '허(虛)'한 공간 위에 부유하듯 떠 있는 잎의 이미지와, 그 위에 연필로 새겨진 'withered mokryeon', 날짜, 그리고 작가의 서명.
이 '텍스트'는 한의정 평론가가 분석했듯, 작품(에르곤)의 의미를 무한 확장하는 '파레르곤(Parergon)'이다. 디지털의 차가움에 '필력(筆力)'의 온기를 더해, 복제 시대에 '아우라(Aura)'를 되살리는 이 행위는 '사진(빛으로 쓰기)'과 '드로잉(손으로 쓰기)'을 '선(Trait)'이라는 하나의 행위로 통합한다. 들뢰즈의 '결정-이미지(Crystal-Image)'처럼, '지나가는 현재(죽음)'와 '보존하는 과거(구원)'가 하나의 화면에 분리 불가능하게 합착(合着)된 '시간' 그 자체가 우리 앞에 현시(顯示) 한다.
두 번째는 '카네이션 시리즈'다. '목련'이 '축적'이라면, '카네이션'은 '폭발'이다. 90x90c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는 9개의 격자(Grid)로 파열되어 '사건(événement)'의 압도적인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김기현 평론가는 이 작업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경이로운 개념으로 꿰뚫는다. 작가에게 카네이션은 '정신을 담는 몸', 즉 '육(肉)'이다. 작가는 "하나의 꽃이 생기를 처절하게 잃을 때까지 매일 아침 9시" 그 '파괴의 과정'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사라진 육체와 같은 물상에 정신(작품)을 불어넣어 불멸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것은 '죽음'의 기록이 아닌, 가장 처절한 소멸의 순간에 '새로운 탄생(New Born)'을 선언하는 성스러운 구원의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대주제인 '시든 풀 시리즈'가 이 모든 서사를 아우른다. '시든 풀(witheredgrasses)'과 '검은 시든 풀(blackwitheredgrasses)'의 이미지 속에는 놀랍게도 '푸른 풀(greengrasses)'이 함께 자라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궁극적인 메시지와 마주한다. '시든다'라는 것은 '끝'이 아니다. '소멸'은 '생성'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에서 공존하는 '상태' 그 자체다. 그가 천착해 온 '검은색(어둠)'은 '빛의 결여'나 '죽음'이 아니라, '빛 이상의 빛(Outrenoir)', 즉 "모든 가능성이 탄생하는 장소"다. 김현미 평론가가 '시든 목련 잎'에서 작가의 오랜 화두인 '탈(脫)'과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경지를 발견했듯, 이용택은 '시든 풀'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이분법을 넘어선 '영원한 순환'을 이야기한다.
30년 전 스쳐 간 인연이, 네오아트센터의 개관 전 작가로, 그리고 이제 한 명의 컬렉터와 작가로 다시 만났다. 필자의 공간에 걸린 그의 80호 대작은 매일 '찰나'와 '영원'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오는 11월, 네오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용택의 '시든 풀'은 가장 일상적인 '시듦'을 통해 가장 숭고한 '영원'을 목격하는, 압도적인 철학적, 미학적 경험이 될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대표 박정식
더욱 놀라운 인연은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가 바로 이 교수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작년 가을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 이 교수 댁에 저녁 초대를 받아 25년 만에 사모님을 다시 뵈었을 때, 30년에 걸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인연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용택 교수는 네오아트센터 '개관 전 초대 작가'이기도 하다. 센터의 첫걸음을 함께했던 그를, 오는 11월 5일부터 12월 7일까지 3, 4관의 넓은 공간에 다시 초대하여 전시하게 되었다. 작년 청주교대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방문하여 필자가 목도했던 광활한 작품 세계, 그리고 이후 좋은 기회로 소장하게 된 80호 크기의 대작은, 이번 초대전이 단순한 기획을 넘어 깊은 예술적 공감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이용택은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다. 그의 30년 화업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화두는 '탈(脫)'의 정신, 즉 "한국화의 정형화된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모색이었다. 그의 초기 작업은 '먹(墨)'과 '기호(Sign)', '유현(幽玄)한 어둠' 속에서 '선(禪)'의 경지를 탐구하는 추상 작업에 맞닿아 있었다.
그런 그가 '붓' 대신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양의 정신'을 탐구하던 작가가 가장 현대적이고 차가운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것은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 아닌, 필연적인 확장이다. 그에게 스마트폰 카메라는 '복제'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찰나의 광학'을 빌려 '사물의 존재'를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자신의 근본적인 화두를 '공간' 위에 배열하기 위한 새로운 '붓'이다.
그는 "본 것과 보이는 것을 디지털로 그리고, 내 생각을 재현한다"고 말한다. 이번 '시든 풀' 전시는 이 '광학(Optics)'과 '사유(Thought)'가 어떻게 결합하여 영원에 이르는지를 세 개의 연작을 통해 극적으로 증명한다.
첫 번째는 166점의 '목련 시리즈'다. 교정 바닥에 떨어진 시든 목련 잎들을 기록한 이 연작은 '시간의 축적'을 보여준다. 29.7x42cm의 동일한 프레임 속에 담긴 166개의 잎은, 단순히 '사물의 전후'를 기록한 '순차적 모션'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을 통해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고, 이 차이는 관객의 감각 속에 '강도(intensité)'로 쌓여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그가 '광학적 기록' 위에 "내 이성과 감정에서 나온 손과 눈의 작업", 즉 '텍스트 드로잉'을 더하는 순간이다. 한지(韓紙)의 '허(虛)'한 공간 위에 부유하듯 떠 있는 잎의 이미지와, 그 위에 연필로 새겨진 'withered mokryeon', 날짜, 그리고 작가의 서명.
이 '텍스트'는 한의정 평론가가 분석했듯, 작품(에르곤)의 의미를 무한 확장하는 '파레르곤(Parergon)'이다. 디지털의 차가움에 '필력(筆力)'의 온기를 더해, 복제 시대에 '아우라(Aura)'를 되살리는 이 행위는 '사진(빛으로 쓰기)'과 '드로잉(손으로 쓰기)'을 '선(Trait)'이라는 하나의 행위로 통합한다. 들뢰즈의 '결정-이미지(Crystal-Image)'처럼, '지나가는 현재(죽음)'와 '보존하는 과거(구원)'가 하나의 화면에 분리 불가능하게 합착(合着)된 '시간' 그 자체가 우리 앞에 현시(顯示) 한다.
두 번째는 '카네이션 시리즈'다. '목련'이 '축적'이라면, '카네이션'은 '폭발'이다. 90x90c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는 9개의 격자(Grid)로 파열되어 '사건(événement)'의 압도적인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김기현 평론가는 이 작업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경이로운 개념으로 꿰뚫는다. 작가에게 카네이션은 '정신을 담는 몸', 즉 '육(肉)'이다. 작가는 "하나의 꽃이 생기를 처절하게 잃을 때까지 매일 아침 9시" 그 '파괴의 과정'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사라진 육체와 같은 물상에 정신(작품)을 불어넣어 불멸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것은 '죽음'의 기록이 아닌, 가장 처절한 소멸의 순간에 '새로운 탄생(New Born)'을 선언하는 성스러운 구원의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대주제인 '시든 풀 시리즈'가 이 모든 서사를 아우른다. '시든 풀(witheredgrasses)'과 '검은 시든 풀(blackwitheredgrasses)'의 이미지 속에는 놀랍게도 '푸른 풀(greengrasses)'이 함께 자라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궁극적인 메시지와 마주한다. '시든다'라는 것은 '끝'이 아니다. '소멸'은 '생성'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에서 공존하는 '상태' 그 자체다. 그가 천착해 온 '검은색(어둠)'은 '빛의 결여'나 '죽음'이 아니라, '빛 이상의 빛(Outrenoir)', 즉 "모든 가능성이 탄생하는 장소"다. 김현미 평론가가 '시든 목련 잎'에서 작가의 오랜 화두인 '탈(脫)'과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경지를 발견했듯, 이용택은 '시든 풀'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이분법을 넘어선 '영원한 순환'을 이야기한다.
30년 전 스쳐 간 인연이, 네오아트센터의 개관 전 작가로, 그리고 이제 한 명의 컬렉터와 작가로 다시 만났다. 필자의 공간에 걸린 그의 80호 대작은 매일 '찰나'와 '영원'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오는 11월, 네오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용택의 '시든 풀'은 가장 일상적인 '시듦'을 통해 가장 숭고한 '영원'을 목격하는, 압도적인 철학적, 미학적 경험이 될 것이다.
/ 네오아트센터 대표 박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