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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작가/ 흙의 캔버스에 새긴 푸른 온기 상세 내용

김진규 작가/ 흙의 캔버스에 새긴 푸른 온기
흙의 캔버스에 새긴 푸른 온기
평면으로 탈주한 김진규의 분청과 생활 속 예술

2년 전, 진천 도종갤러리에서 열린 12인 초대전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발걸음은 구석에 무심히 놓인 도판(陶板) 앞에서 멈춰 섰다. 촘촘한 점들로 가득 찬 네모난 흙판 위, 작고 외로운 물고기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언가를 담아내는 전통적인 '그릇'이 아니라, 작가의 철학을 투영하는 '캔버스'였다. 도예가 김진규와의 인연은 그렇게 평면으로 표현된 한 마리의 물고기에서 시작되었다.

2026년 초대 작가 선정을 위해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검토하면서 나는 이 매력적인 조형 세계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했다. 흰 바탕에 맑고 선명한 푸른빛이 감돌아 얼핏 조선의 청화백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의 작업은 철분이 많이 함유된 투박한 태토(胎土) 위에 백토(白土)를 입히는 '분청(粉靑)'에 그 뿌리를 둔다.

작가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무수히 많은 도장을 찍어 전면에 인화문(印花紋)을 새긴다. 이는 잡념을 비우고 고요한 춤을 추듯 나아가는 구도적 수행의 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빼곡한 무늬를 하얀 분장토로 덮어버린 뒤, 다시 일부를 긁어내어 형상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역설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감추기와 드러내기의 묘한 긴장감 속에서, 최근 그의 작업은 자연의 구상적 형태를 넘어 현대 추상의 영역으로 과감히 진입하고 있다. '무한한 확장(Infinite Expansion)'과 'Dot Series-Blue' 시리즈에서는 도예의 영역을 넘어 조각과 회화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백색 바탕 위에 푸른 점을 찍어내거나 기하학적인 선과 면을 분할하는 이 작업은, 조민주 미술사학자(덕성여대 연구교수)가 통찰했듯 1970년대 김환기 화백의 '전면점화'가 보여준 우주적 추상성을 21세기의 흙과 불로 재해석해 낸 듯한 깊은 울림을 준다.

이 거대하고 철학적인 추상성이 관람객에게 난해함이 아닌 '친근함'으로 다가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작가가 빚어낸 단순한 조형적 이미지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스며드는 색의 조합 덕분이다.

캔버스가 아닌 투박하고 따스한 흙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 위에 얹혀진 푸른빛은 결코 차갑거나 매섭게 시선을 찌르지 않는다. 오히려 동심원처럼 부드럽게 번져나가는 푸른 점과 선들은 시각적인 긴장을 풀어주며 우리에게 묘한 포근함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차가운 현대 추상의 문법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진규의 분청 앞에 서면 기묘하게도 따뜻한 위로와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온기의 또 다른 깊은 비밀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의 삶과 태도에 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주한 그는 '순수'와 '열정' 그 자체였다. 묵묵한 예술의 길 이면에는 영원한 동반자인 도예가 은소영 작가가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강렬한 '푸른색'은 단순한 화학적 안료가 아니다.

그것은 암울했던 시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 소중한 인연과 함께 작업하며 처음 사용했던 치유와 낭만의 색이다. 주둥이가 없는 편병이나 서구식 기형인 스툴 등 파격적인 기형은 도자 예술의 개념적인 조형성을 한층 배가시키면서도, 이 푸른빛의 따뜻한 서사와 만나 우리 삶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오는 3월 11일, 네오아트센터에서 그의 작품들이 만개한다. 기계적인 힘이 아닌, 흙판을 직관적으로 자르고 이어 붙이며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게 빚어낸 형태들이 관람객을 맞이할 것이다. 거대한 달항아리부터 일상에 스며드는 평면 도판과 스툴까지, 우리는 미술관 단상 위에 박제된 예술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생활 속 예술'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봄의 문턱, 흙의 캔버스 위로 번져나가는 저 푸른 파동이 팍팍한 현대인의 가슴에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길 기대한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