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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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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순 조각가/ 비워낸 자리에 쏟아지는 영원의 빛 상세 내용

장백순 조각가/ 비워낸 자리에 쏟아지는 영원의 빛
장백순이 빚어낸 거대한 시공(時空)

10년 전, 사옥 건축을 위한 사전 조사차 청주 외곽에 자리한 장백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푸른 잔디밭 위로 정갈하게 구획된 작업 공간과 갤러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작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2021년 청주시립미술관에서 마주한 그의 작품은 내게 엄청난 미학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시장 허공에 부유하듯 매달린 거대한 마(麻) 불상 군집. 기독교 신자인 필자가 '불상'이라는 도상 앞에서 그토록 깊은 감동에 휩싸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종교적 권위 때문이 아니었다. 겹겹이 쌓인 삼베의 텅 빈 공간 사이로, 작가가 쏟아부은 무수한 인고의 시간과 순수한 '예술적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뿐히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과 숭고함을 건드리던 그 압도적인 에너지가, 10년의 세월을 건너 이제 네오아트센터에서 '시공(時空)'이라는 주제의 초대전으로 펼쳐진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그 위력 앞에 모든 육신과 세속의 권력은 결국 대지의 품으로 바스러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피할 수 없는 시공의 숙명 앞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찰나를 붙잡아 영원의 불꽃으로 빚어내는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이번 초대전은 1, 2관에서 전혀 다른 물성과 분위기로 전개된다. 1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허공에 부유하는 거대한 삼베 두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트럼프와 김정은, 세계정세의 정점에 선 권력자들의 형상을 수의(壽衣)를 짓는 거친 마로 엮어냈다. 어떤 절대 권력도 시간의 바람 앞에서는 스쳐 가는 허무에 불과함을 꼬집는 예리한 은유 속에서, 역사를 비웃듯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이 흥미롭다.

또 다른 한쪽 벽면에는 1800도의 맹렬한 가마 속에서 불필요한 것을 모두 태우고 본질만 남긴 흑연 작업들이 고요히 도열해 있다. 여기에 차갑고 단단한 금속 조각들이 어우러지며, 끊임없이 흐르는 자연의 유동성을 영원히 멈춰 세운 듯한 시공 초월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2관은 1관의 거대한 긴장감을 작가의 치열한 땀이 밴 '시간의 지층'으로 따뜻하게 포용한다. 대형 골판지를 평면으로 자르고 그 미세한 틈새마다 세필로 안료를 채워 넣었다. 단순한 평면 회화를 넘어 입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작품들은 지난 3년간 수행의 결과물이다.

특히 관람객의 발걸음에 따라 은밀하게 색채를 바꾸며 살아 숨 쉬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일렁이는 캔버스 위로 고대 암각화를 연상케 하는 도상들이 보이고, 작가가 직접 채집해 가마에 굽고 금박을 입힌 '흙 벌집'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흙 벌이 고단한 노동(자연의 시간)을 불꽃으로 구워내 황금빛(영원)으로 박제한 이 작품들은, 공간을 채우기보다 오히려 '비워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화면 속에 완벽하게 결속시킨다.

우리가 남긴 행위는 흔적이 되어 미래의 길 위로 이어진다. 장백순 작가가 덜어내고 비워낸 네오아트센터의 공간에는 삼베의 성찰, 흑연의 침묵, 금속의 비상, 그리고 골판지 속 수많은 픽셀이 모여 만들어낸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다. 시립미술관의 마 불상 앞에서 필자가 느꼈던 그 순수한 전율이, 이제 이 공간을 거니는 모든 이들의 사유 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질문으로 다시 움트길 기대한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