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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완석 작가/ 차가운 금속을 깨고 분출한 무위(無爲) 상세 내용

고완석 작가/ 차가운 금속을 깨고 분출한 무위(無爲)
고완석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곳은 2년 전 아산 모나밸리의 전시장 입구 외벽이었다. 자연의 빛과 물의 파동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주변의 풍경을 끊임없이 반사하며 건축적 아이덴티티를 강렬하게 뿜어내던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의 낯선 질감은 내 시선 속에 깊은 잔상으로 남았다.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익숙한 평면의 관습을 벗어나, 공간 전체를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버리는 그 압도적인 물성의 힘. 그것이 내가 기꺼이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게 만든 이유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캔버스의 부드러움 대신 차갑고 완고한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을 30년 동안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는 금속 표면에 포토레지스트(작가는 이를 '상감기법'이라 칭한다) 방식으로 흠집을 내고, 그 부식된 표면에 유성 안료와 아크릴 물감으로 도상과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공정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반도체 공정에도 사용되는 기법으로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수작업이 빚어내는 자연의 우연성과 섭리를 정교하게 새겨왔다. 에칭 기법으로 파인 거친 선들은 시간의 풍화를 암시하고, 그 안을 채운 다채로운 색채는 차가운 이성 속에서 꿈틀대는 뜨거운 생명력을 은유한다.

지난 수요일, 네오아트센터에서 개막한 고완석 초대전은 그 30년의 단조(鍛造) 끝에 마침내 캔버스로 귀환하여 작가의 또 다른 에너지를 목도하는 자리다. 이번 초대전 전시 작품 중 1천 호 사이즈 대작은 작업실 실내 공간이 아닌 옥상의 탁 트인 무한한 하늘 아래서 제작되었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30년간 억눌러왔던 그의 필력(筆力)이 열린 공간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하며 거침없이 뿜어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새롭게 선보인 캔버스 신작들이 품고 있는 특유의 마티에르다. 묵직한 도료의 두께감과 날 선 엣지(Edge)는, 그가 오랜 세월 금속을 깎아내며 체득한 '감각'을 캔버스 위에 완벽하게 이식했음을 증명한다. 눈이 시리도록 쨍한 마젠타와 코발트블루, 강렬한 노란색의 단색조 여백 위로 우주의 질서처럼 그어진 거대한 검은 획, 그리고 그 무거운 덩어리의 경계 끝자락에 사뿐히 내려앉은 한 마리 나비의 도상은 절대성과 찰나의 생명이 충돌하는 아찔한 미학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1천 호 대작의 거대한 에너지가 네오아트센터의 쾌적한 화이트 큐브 안에서 어떻게 호흡해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한쪽 벽면에 평면적으로 억지로 나열하기보다, 과감하게 피스를 분리하여 메인 공간과 전시장 뒤편 아티스트룸에 나누어 설치하는 디스플레이를 택했다. 이를 통해 메인 전시장의 여백과 밸런스를 지켜내는 동시에, 분리된 작품 역시 하나의 완벽히 독립된 개체로 기능하도록 동선을 구축했다. 관람객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캔버스 신작의 뜨거운 생명력과, 스테인리스 금속 작품이 뿜어내는 차가운 이성이 교차하는 다층적인 공간을 감사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화두를 "LOOK(바라보기)"이라 명명한다. "대상을 본다고 해서 그 진실을 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 노트의 일갈처럼, 그의 작품은 유(有)와 무(無), 카오스와 코스모스라는 이분법적 경계가 맞닿은 입방체의 철학을 시각화한다. 금속의 일렁이는 표면은 단순한 반사체가 아니다. 감상자가 작품의 유기적인 형상과 더불어 그 안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철학적 거울'이다. "태초에는 법이 없었다"는 노자의 사상을 인용하며 "내 법을 만들라"고 외치는 그의 예술적 뚝심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사유의 확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모나밸리의 차가운 금속 외벽에서 마주했던 강렬한 첫인상이, 작업실 옥상의 바람을 맞으며 뿜어낸 대작의 웅장한 필력을 거쳐, 마침내 네오아트센터의 갤러리를 가득 채우는 존재의 거울로 완성되었다. 차가운 금속판과 역동적인 캔버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빚어낸 고완석 작가의 무위(無爲)의 시(詩)가, 전시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LOOK'을 통한 진정한 앎과 내면 성찰의 귀한 사유적 장(場)이 되기를 깊이 소망한다. / 네오아트센터 박정식 대표